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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유물소개(1) 언더우드 가(家)의 한국어 학습 노트 - 손승호(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사무국장)
서양 선교사들의 한국어 배우기
어느 지역에서든 선교사들은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으로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복음이든 문화든 무언가를 전달하려면 일단 말이 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현지인을 언어 선생으로 고용해서 현지어와 문화, 예법 등을 배우는 게 선교사의 첫 번째 사역이 되는 것이죠. 현지어를 얼마나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선교의 성패를 가를 만한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1884년 의료 선교사 알렌(Horace N. Allen)을 처음 한국에 파견하면서 한국 선교를 시작한 미국 북장로회에는 탁월한 어학 능력을 갖춘 초기 선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와 게일(James S. Gale) 선교사는 한국 최초의 영어 사전인 『한영영한자전』(韓英英韓字典, 1890년, 언더우드)과 『한영자전』(韓英字典, 1897년, 게일)을 출판했습니다. 교육 선교사였던 애니 베어드(Annie L. A. Baird)는 좀 더 본격적인 한국어 교본인 『한국어 입문자를 위한 50가지 도움』(Fifty Helps for the Beginner in the Use of the Korean Language, 1896년)을 만들었습니다. 애니 베어드의 한국어 실력은 정말 탁월해서 그가 번역한 찬송가 가사를 한국 교회가 지금도 거의 그대로 부르고 있기도 합니다.
먼저 온 선교사들이 언어를 너무 잘하면 뒤에 온 선교사는 고생을 하게 됩니다. 앞에서 사람들의 기대 수준을 너무 높여 버리니까요. 1899년에 내한한 새디 웰본(Sadie Welbon) 선교사의 편지를 보면 선교사들의 한국어 공부가 꽤 어렵고 힘든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들은 3년 동안 매년 한국어 시험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언어 시험은 필기, 구술, 번역 시험으로 구성되어 있었죠. 다행히 듣기 평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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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공부, 그 애달픈 노력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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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언더우드 선교사 집안에서 나온 한국어 학습 노트로서 기독교대한감리회의 홍승표‧홍이표 목사 형제가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에 기증한 것입니다. 이 노트는 우리가 잘 아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손자인 원일한(Horace G. Underwood Ⅱ) 선교사가 한국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떠나면서 집안의 물건을 정리할 때 기증자들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노트는 언더우드 선교사 집안의 누군가가 한국어를 공부하며 남겼던 노트로 추정하고 있는데, 새문안교회에 보관된 1대 언더우드 선교사의 글씨와는 필체가 많이 다릅니다. 언더우드 집안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 온 이 노트의 기증자는, 이 필체가 2대 언더우드, 원한경 선교사의 필체와 유사하다며 아마도 그의 것이 아닐까 하는 의견을 제공했습니다. 아직 확실히 누구의 글씨인지는 밝히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문화관에서는 “호러스 언더우드 선교사, 또는 그 가족 중 한 명이 한국어를 공부했던 노트”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노트는 여러 장이 있는데 그중에 위 사진에 제시된 페이지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랑”이나 “행복” 같은 예쁜 말이 있는 부분을 전시하려고도 했지만, 이 페이지에 “통촉하다”, “어명” 같은 말이 있는 것을 보고,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이런 한국어 단어를 외우고 있는 모습이 당대의 분위기를 더 잘 반영하는 것 같아서 이것을 전시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박물관에 가시면 위에서 언급한 한국어 학습 책들을 간혹 보실 수 있습니다. 그 책들은 공식적으로 출판된 책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교사들의 생생한 생활상이 느껴지는 이 학습 노트는 우리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에서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좋은나무>에 게시된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전재 글 바로가기 ☞ 언더우드 가(家)의 한국어 학습 노트(손승호) – 기독교윤리실천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