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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 선교140주년? 141주년? 193주년? (안교성)

2025년 7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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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선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많은데, 관련 연도부터 논란이다. 첫 번째 칼럼이니, 이 문제부터 정리해 보자. 사실 선교 기원에 대한 논의는 오래됐다. 크게 1884년 설, 1885년 설, 1832년 설 등이 있다.


가장 먼저 정착된 것은 1884년 설이다. 초창기부터 선교부들은 1884년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해 9월 첫 번째 거주 선교사 알렌(H.N. Allen, 장로회)이 입국했다. 그는 갑신정변 때 민영익을 극적으로 치료하여 선교의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에 앞선 6월에 한국선교를 준비하러 매클레이(R. S. Maclay, 감리회)가 방문했다. 그는 중국선교사로 출발해서 일본선교사가 된 인물로, 일본선교 개척과 한국선교 개척에 기여했다. 따라서 1884년 설은 일찍 정착되었지만, 매클레이와 알렌 중 누가 먼저냐가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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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대두된 것은 1885년 설이다. 매클레이는 단기 방문에 그쳤고 알렌은 얼마 후 외교관으로 변신했다. 한국교회의 기원으로 이어지는 교회 사역을 한 목회자 선교사는 1885년에 입국했다. 다행히 아펜젤러(H.G. Appenzeller, 감리회)와 언더우드(H.G. Underwood, 장로회)는 부활절에 동시 입국하여 누가 먼저냐는 시비는 없었다. (* 흥미롭게도 이 둘은 이름의 약자도 똑같다.) 감리회 선교부는 위험을 대비하여 한국 선교사 일행을 둘로 나눠 보냈고, 그 결과 같은 해 5월에 의료와 교육 선교에 족적을 남긴 스크랜턴 가족이 2차로 입국했다. 여하튼 교회 사역에 관심이 큰 한국교회는 당연히 1885년을 선호했다. 그 결과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행사도 절충안으로 1984~1985년 2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세 번째는 1832년 설이다. 한국을 최초로 방문한 선교사인 귀츨라프(K.F.A. Guetzlaff, 초교파, 루터파)가 최근 주목받고 있다. 그는 약 한 달간의 서해안 섬 방문 중 성경을 전하고 약을 나눠주고 주기도문을 번역했다. 그러다 보니 최초 선교사가 루터교라는 주장도 대두되었으나, 그는 초교파 선교회 소속이었다가 독립선교사가 되었기에, 이 주장은 학계의 논의가 필요하다. 이른 시기 한국을 방문한 선교사로는 평양의 대동강변에서 1866년 순직한 토마스(R.J. Thomas, 초교파, 회중교회 출신)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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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선교의 개시 연도를 보면, 입국한 장기 선교사를 중심으로 하면 1884년 알렌 설이 유력하고, 방문한 단기 선교사를 중심으로 하면 1832년 귀츨라프 설이 유력하다. 이와 더불어 만주에서 성경번역에 참여한 신앙공동체 설(1879년), 의주 신앙공동체 설(연대 확정 어려움), 소래교회 설(연대 확정 어려우나 대략 1883~1885년)이 있으나, 이것은 선교 기원이 아니라 한국교회 기원과 관련된 것이기에, 범주가 다르다.


좀 더 범위를 넓혀 한국기독교의 기원을 살펴보면, 1832년 이전에도 역사적 확실성은 높지 않지만 다양한 기독교 전래 역사가 있었다. 삼한 시대 김수로왕 치세 당시 사도 도마 전승을 따르는 인도교회 전통과 관련된 인도 공주의 입국, 신라 시대 경교의 전래설, 고려 시대 충렬왕의 왕비인 몽골 공주와 정동행성(征東行省)의 평장정사(平章政事)를 통한 경교의 전래, 조선 시대 소현세자를 따라 입국한 명나라 가톨릭 신자 나인, 정조 재위 당시 실학파 학자 출신의 자생적 신앙인 대두, 조선 시대 주문모 등 중국 가톨릭 선교사의 내한 등이 모두 그런 사례이다. 장차 이런 모든 지점을 망라한 논의가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