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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의 순간들(7) : 선교 150주년, 더 이상 넘어야 할 벽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여정

2025년 11월 26일

벽 너머의 벽 Wall Beyond Wall

사랑과 평화의 마음으로 막힌 벽을 넘고자 했던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순간들(7): 2034년 한국 기독교 선교 150주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새 세상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장벽이 없는 사회로 그렸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 교회는 새 세상의 출발점이었고, 세계로 확산되면서 장벽들을 허물었다. 물론 그 일은 쉽지 않았고, 속히 이뤄지지도 않았다. 때로는 교회가 장벽이 되었다.


기독교가 처음 넘어야 할 장벽은 인종 차별이었다. 세상은 다양성으로 가득차 있고, 따라서 근본적으로 구별이 존재한다. 문제는 구별이 차별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기독교는 유대인의 민족주의를 넘어 모든 인종의 보편주의를 지향하여, 세계종교가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항상 특정 민족주의와 손잡으려는 유혹을 받아, 국수주의적 종교로 전락하곤 했다.


기독교 앞에 놓인 두 번째 장벽은 계급 차별이었다. 인간을 상하 관계로 나누려는 시도는 역사상 신분, 계급, 계층 등 명칭을 달리하면서도 지속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승천 전 마지막 교훈에서 자신과 제자들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15:15). 기독교는 궁극적으로 원수를 이웃으로 바꾸고, 상하 관계를 친구 관계로 바꾸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선지 기독교 역사에 ‘우정’을 내세운 운동이 많고, ‘친우회’(Society of Friends, 퀘이커교)라는 교파도 있다.


세 번째 큰 장벽은 성별 차별이었다. 역사상 여성을 백안시하는 가부장주의가 완강하게 이어졌다. 여성은 아예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아녀자’라는 통칭을 통해 아동과 같은 부류로 취급되었다. 근현대에 등장한 여성주의의 역사는 성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으려는 후발주자의 치열한 노력으로 점철되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세상에는 인종, 계급, 성별 등 잘 알려진 장벽도 있지만, 이밖에도 장벽들이 넘쳐난다. 아동과 성년 간의 연령 차별(최근에는 노년 차별), 제1세계와 제3세계 간의 국력 차별(최근에는 정치적 발언권을 갖지 못한 비주류 종족을 가리키는 제4세계 차별),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장애 차별, 성직자와 평신도 간의 직분 차별(최근에는 비전문인 차별), 토착인과 이주민 간의 이주 차별(최근에는 북한이탈주민 차별, 아시아인이 다수를 이루는 신한국인 차별) 등 다양하다.


장벽은 담을 가리키는 ‘장’(墻)과 벽을 가리키는 ‘벽’(壁)의 합성어이다. ‘벽’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가로막음’이란 의미를 나타낼 수 있지만, ‘장벽’이란 합성어는 의미를 배가한다. ‘장’의 훈과 음은 우리말 ‘담’을 사용한 ‘담 장’이고, ‘벽’의 훈과 음은 한자어 ‘벽’을 사용한 ‘벽 벽’이다. 벽의 훈과 음에 벽이란 단어가 중복된 것을 보면, 벽을 가리키는 우리말은 원래 없던지 잊혀진 듯하다. 언어에 따라, 담과 벽을 구분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여하튼 담이 개방적 특성이 좀더 강하다면, 벽은 폐쇄적 특성이 좀더 강하다. 장벽 없는 세상을 향한 길에는 부수지 않고 넘을 수 있는 담도 있지만 반드시 뚫고 부셔야 하는 벽도 있다. 따라서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나설 필요가 있다.


작년과 올해는 선교 140주년을 기념했다. 10년 후면 선교 150주년이다. 그때가 되면, 사회의 장벽이 더 많이 무너져 내렸을까?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은 장벽 없는 사회를 지향한다. 그런 구체적인 노력의 첫걸음으로, 건물에 장애인을 환영하는 마음을 담고자 무장애(베리어프리, barrier-free) 설계로 건축했다. 우리 역사문화관과 더불어, 관람객, 한국교회, 나아가 한국 사회가 우리 사이의 장벽을 헐고 대신 다리를 놓는 일에 함께 나서는 꿈을 꾸어본다.